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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임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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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플렛 메이저

김동률_잔향

 

손톱을 깎고 발톱을 깎았다. 펄이 섞인 초록빛 페디큐어도 지웠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올려 묶었다. 그러고도 끝자락이 어깻죽지를 한참 지난다. 너무 길구나, 오늘은 정말로 머리를 하러 가야겠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꽈당이 내게도 왔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넘어져 이미 나는 작살이 나버렸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났지만 일어서지 못한다. 의미의 논리는 한 달이 다 되도록 같은 곳을 돌고 있으니 차라리 무진 기행이나 다시 읽어볼까. 혼자 힘으로는 앞으로 갈 수가 없다. 이러리라 상상도 못했지만 가지지 않는다. 살아본 이래 처음 같은 굉장한 슬럼프다. 그러나 나는 감정의 순간이동으로 잘 웃을 줄도 아니 천만 다행이다. 바흐가 흐르는 겨울 아침. 느리고 조용하게 당신과 커피 한잔을. 건배.

 

아홉 살 꼬마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부터 이유도 없이 B flat음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 음을 근음으로 하는 B flat Major는 C Major의 경쾌함, A Major의 씩씩함과는 또 다른, 겨울을 이겨낸 이른 봄 따스한 아지랑이 같은 기분이 든다. 더 잃을 것도, 얻고 싶은 것도 없다 생각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던 길 위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야 새로운 길을 발견하던 아침. 그리고 밤. "버릴수록 가벼워지면서 깊어지는 것 같아. 너의 눈빛도."  삶으로부터의 작업에 고통스럽던 어느 오후, 친구의 문자 한통에 숨이 메인다.